37 차 유럽 배낭여행 후기입니다.
처음 이 여행을 가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단순히 여행 장소가 유럽이기 때문이었다. 유럽을 가고 싶다는 내 말에 어머니께서 이 캠프를 추천해 주셨고, 나는 모집 공고의 내용도 거의 보지 않고 가겠다고 하였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여행을 가게 되었고, 출국 직전에는 가기가 싫어져서 ‘가지 말까?’ 하는 생각까지 하였다. 그러나 여행을 가게 되니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나 좋았고, 많은 것을 깨닫고 배우고 돌아왔다.
프랑스에서 간 장소들 하나하나가 모두 귀하고 소중하지만, 내게 가장 좋았던 곳은 단언컨대 오르세 미술관이었다. 오르세 미술관 건물은 버려진 기차역을 개조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안에 있는 작품들뿐만 아니라 건물 자체도 하나의 예술이었다.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과 고갱의 ‘즐거움’ 같이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을 본 것도 좋았지만, 처음 본 작품들에 빠져들어서 그 작품들을 알아가는 것도 좋았다. 특히 나를 사로잡은 작품은 모네의 ‘양산을 든 여인’이었다. ‘모네’라고 검색하였을 때 한참 스크롤을 내려야 나오는 것을 보니 많이 유명한 그림은 아닌 것 같지만, 내게는 최고의 작품이다. 오르세 미술관을 통해 내가 미술품들을 관람하는 것을 생각보다 아주 많이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 스스로에 대해 하나 알아낸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셋째 날에 다녀왔던 개선문도 기억에 남는다. 대부분 사람들은 개선문이 하나인 줄 알고 있지만, 파리의 개선문은 총 세 개이다. 세 개선문의 중심에 에투알 개선문이 있고, 샹젤리제 거리를 따라가다 보면 카루젤 개선문이 있고, 그 반대 방향으로 쭉 가면 그랑드아르슈 개선문(신개선문)이 있다. 이 세 개선문이 프랑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상징한다는 것이 인상 깊었다. 세 개선문 중 제일 유명한 에투알 개선문에는 한국전쟁의 흔적도 남아 있는데, 프랑스에서 한국의 흔적을 본다는 게 신기했다.
프랑스에서 아쉬웠던 점은... 빅 버스를 주 이동수단으로 이용했는데 추웠다는 정도였다. 이런 사소한 것만 아쉬웠을 정도로 프랑스는 내게 굉장히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숙소도 너무 괜찮았고, 야경도 예뻤고 새벽에 일어나서 보는 해 뜨는 풍경도 예뻤다. 우리나라에는 아파트 등 고층 건물들이 많아서 하늘이 거의 보이지 않았는데, 프랑스를 비롯하여 유럽에서는 맑고 깨끗한 하늘이 보여서 좋았다.
스위스에서는 루체른을 먼저 들렀다가 우리가 머물렀던 베른으로 갔는데, 루체른에서는 ‘빈사의 사자상’이 기억에 남는다. 스위스 용병들은 잘 싸운다고 소문이 자자했기에 프랑스 혁명 당시 왕실에서 이들을 고용했다고 한다. 근데 왕족들은 졌고, 용병은 말 그대로 돈을 받고 싸워 주는 역할이기 때문에 도망치는 것이 그들이 살 길인데 스위스 용병들은 그러지 않고 끝까지 싸웠다. 사자상은 이렇게 용맹하셨던 스위스 용병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 나도 스위스 용병들처럼 끝까지 내가 해야 할 일을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해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베른은 스위스의 수도이다. 수도라는 말에 엄청나게 차가 많고 건물도 높고 사람들도 많은, 발달되어 있는 나라의 중심지를 떠올렸었는데 베른은 여느 수도들과는 다르게 평화로운 분위기여서 신기했다. 베른에서는 아인슈타인 생가도 기억에 남고, 근데 또 베른 대성당도 좋았고 한편으로는 자연사 박물관도 생각이 난다. 아인슈타인이 독일 국적인데 스위스에서 3 년 동안 연구를 했다는 것도 흥미로웠고, 베른 대성당 덕에 고딕 양식은 아치 모양이 뾰족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자연사 박물관은 조금 안 좋은 기억을 남겨 주었다. 그곳에서 맨 처음 본 것이 동물들의 가죽인데, 박물관 직원분께서 모두 다 실제 동물들의 가죽이라고 하셔서 마음이 안 좋았다. 인간이 관람해야 한다는 이유로 죄 없는 동물들을 죽여서 가죽을 벗겨도 되는 걸까? 살아서 숨 쉬는 생명이 나을까, 비록 죽어서라도 두고두고 인간들에게 관람되고 전해져 내려오는 가죽이 나을까? 나는 전자가 맞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살기를 원하듯이, 동물들도 그랬을 것이다.
여섯 번째 날에는 알프스 산맥을 갔다. 솔직히 알프스 산맥은 기대를 하나도 하지 않고 갔는데, 막상 가 보니 산도 예뻤고, 만년설이 쌓여 있는 것도 신기했고, 그 날 날씨가 너무 좋아서 경치도 정말로 너무 너무너무 예뻤다. 생각보다 많이 춥지 않아서 좋았고, 정상에서 먹은 라면도 맛있었다. 특히 눈썰매! 타기 전에 재미없어 보여서 실망했었는데, 타니까 너무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탄 것 같다. 타다가 정말 굉장히 많이 굴렀고 넘어졌고 자빠졌지만 그래도 엄청 재미있었다. 내가 학생들 중 제일 나이가 많았는데 제일 재밌어했던 것 같다 ^^....!
그다음 날에는 이탈리아로 이동했다. 스위스에서 이틀 정도만 머물러서 조금 아쉬웠지만, 이탈리아에 도착하니 너무 이탈리아가 마음에 들어서 스위스는 금방 잊어버렸던 것 같다. 이탈리아에서 맨 처음 간 곳은 베네치아인데, 개인적으로 이탈리아에서 베네치아가 가장 좋았다. 베네치아는 오페라가 유명하다고 선경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셨다. 오페라와 뮤지컬 등 예술 활동도 좋아하고, 가면과 광대도 좋아하는 나로서는 빠져들 수밖에 없는 장소였다. 그냥 베네치아라는 장소에 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가면을 활용한 상품들이 길거리에 매우 많았는데, 거기에서 순식간에 돈을 많이 쓴 것 같다 ^^.... 살짝이 아니라 좀 많이 충동구매였지만, 덕분에 그렇게 충동구매를 할 정도로 내가 가면이랑 광대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기뻤다. 수백 개의 섬을 작은 다리들로 이은 것이 베네치아인데, 다리 아래로 흐르는 물이 지중해라는 것도 신기했다. 통곡의 다리도 기억에 남는다. 법원과 감옥을 잇는 다리인데, 죄수들이 판결을 받고 감옥으로 이동하며 다리 위에서 통곡한다고 해서 이름이 저렇게 붙여졌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들이 재미있었고 흥미로웠다.
피렌체에서는 두오모 성당이 기억에 남는다. 유럽에는 정말 성당이 많은 것 같고, 그렇기에 내가 간 성당도 아주 많은데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 주시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성당 건물을 하늘에서 보면 무조건 십자가 모양이라는 것이 제일 인상 깊었다. 명훈 선생님께서 우리나라의 석굴암과 두오모 성당을 대조해서 말씀해 주셨는데, 우리나라든 이탈리아든 그런 예술품을 남긴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로마에서는 콜로세움이 제일 좋았다. 건물에 대한 지식들을 명훈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셔서 더 자세히 이해했고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검투사들이 대결하던 곳이라는 것도 놀랍고, 관중석 의자들이 대리석이었기에 르네상스 시절 사람들이 조각상을 만들기 위해 거의 대부분 가져갔다는 사실이 재미있었다. 그 시대 사람들은 서로 죽고 죽이는 게임을 관람하는 걸 좋아했나 보다. 나라면 관람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검투사들의 결투는 한 성직자...? 분이 이런 싸움을 멈추라고 결투 도중 소리치시자 돌을 맞아서 그 자리에서 돌아가신 이후로 중단되었다고 한다. 자신의 목숨이 위험한데도 그렇게 신념을 펼치신 그 분이 존경스러웠고, 나도 굽히지 않고 항상 올곧게 내 신념과 철학을 내세우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해야겠다고 느꼈다. 그리고 콜로세움 중앙(?)에 십자가가 있어서 좋았다.
바티칸은 성 베드로 성당도 너무 좋았는데 바티칸 박물관도 너무 좋았다. 성 베드로 성당 같은 성당을 갈 때마다 마음이 편해지는 걸 보니까 생각보다 내가 하나님께 의지를 많이 하나 보다. 이렇게 나 스스로에 대해 알게 되는 게 너무 좋다. 바티칸 박물관에서는 ‘라오콘’이 제일 좋았다. 원래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작품이었는데 직접 보게 돼서 너무 행복했다. 박물관에서 ‘천지창조’ 도 보았는데, 나는 그동안 아담과 하나님이 손가락을 맞대고 있는 그림(이름이 ‘아담의 창조’라고 한다.) 하나만 천지창조인 줄 알았다. 근데 알고 보니 천지창조는 굉장히 컸다.... 이 외에도 새로운 지식을 많이 얻어서 좋았다. 미술관이랑 박물관을 가면 작품들을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데 그게 너무 신기하다. 나도 나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누군가의 기분을 나아지게 할 수 있을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또한 내가 현대미술을 굉장히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다 현대미술 쪽이었는데 이제야 안 것이다 ^^... 이제서라도 알아서 다행이고 이렇게 스스로에 대한 정보가 하나하나 느는 게 행복하다.
이번 여행으로 얻은 것이 많다. 우선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번 37 차 유럽 배낭 여행은 평균 연령이 아주 낮은 편이었고, 그렇기에 이제 열일곱 살이 된 내가 가장 연장자였다. 그렇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친구들을 깔보게 되었고, ‘내가 아무리 그래도 얘네들보다는 똑똑하고 사려 깊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지내보니까 나이는 나이일 뿐이었고, 내가 친구들에게 배우는 게 훨씬 많았다. 나는 배려할 줄도 몰랐고, 겸손할 줄도 몰랐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적은 사람에게 배우는 게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항상 겸손해야겠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
또한 스마트폰으로부터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스마트폰을 들고 갈 수 없다는 것이 제일 불만이었는데 이제 생각해 보니 그래서 더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만약 내가 개인 스마트폰을 가지고 갔다면 계속 SNS를 하면서 현지의 풍경과 캠프를 같이 떠난 친구들에게 집중하지 못 했을 것이다. 스마트폰이 없었기에 여행의 순간 하나하나에 더 빠져들 수 있었고, 해방된 느낌도 느낄 수 있었다. 스마트폰이 없으니까 허전하기도 했지만, 얻은 것이 훨씬 많았다. 귀국해서 다시 내 개인 스마트폰을 손에 쥐게 되니 어색한 느낌마저 들었다.
이 캠프도 어떻게 보면 단체 생활이다. 나는 약 한 달 뒤에 기숙사에 입소하여 고등학교 생활을 해야 하는데, 이번 캠프를 통해 단체 생활을 미리 해 봄으로써 기숙사에서 어떻게 생활해야 할지 조금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항상 주위 사람들이 내게 맞춰 줬었고, 나도 내심 그러기를 바랐기에 내 바람대로 되지 않으면 기분이 상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내가 최대한 먼저 양보하려고 노력했고, 나를 내세우지 않으려고 했다. 내가 많이 이기적이었고 말도 험하게 했는데도 잘 지내 준 열네 명의 친구들과 선생님들께 감사할 뿐이다.
진로에 대한 불안감도 조금은 덜었다. 일단 선경 선생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선경 선생님께 공부와 대입과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는데, 선생님께서 내 얘기를 잘 들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도 해 주시고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는 나를 많이 안심시켜 주셨다. 나는 작년 말에 이미 졸업을 했고 졸업한 후 고등학교 준비를 하느라 학원에 매일 갔고, 갈 때마다 적어도 여덟 시간은 있었다. 그렇게 전 과목을 다 공부하면서도 고등학교에 가고 나서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도 많았고 걱정은 더 많았다. 그런 내게 선경 선생님께서는 당장 앞에 놓인 것을 하다 보면 길이 보일 것이라 말씀해 주셨다. 남에게 휘둘리지 말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행복하다고 하셨는데, 내 생각과 너무 똑같아서 신기했다. 이 외에도 좋은 말씀들을 많이 해 주셨는데, 하나하나 다 내게는 너무 귀한 말들이었다.
여행을 통해 자존감도 많이 올렸고, 자기계발도 많이 했다. 친구들과 선생님들께서 모두 내게 칭찬을 많이 해 줬고, 나를 좋아해 줬다. 베레모를 사서 쓰기만 했는데 잘 어울린다고 말해 주고, 그냥 옷을 입어도 잘생겼다고 해 주고, 창가에 앉아 있기만 해도 화보 같다고 말해 줬다. 내 언행 하나하나를 좋아해 주고, 내 그림도 그려 주고, 내게 편지도 써 주고, 나를 믿고 따라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감사했고 내가 그것에 부합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칭찬 덕분에 자존감을 진짜 많이 올렸고, 친구들과 선생님들께서 내게 좋은 영향을 많이 줬듯이 나도 친구들과 선생님들께 좋은 영향을 줬으면 좋겠다.
나 자신도 많이 돌아보는 여행이었다. 여행 오기 전까지는 공부하기에 바빠서 정작 나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여행을 다니며 사소하지만 나에 대한 것들을 하나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무엇을 하면 내가 행복한지, 내가 무엇을 하는 걸 좋아하는지 등등을 알아내는 과정이 너무 좋았다. 나 스스로에게 조금은 가까워진 느낌이다. 스스로에게 엄청나게 엄격했던 나인데, 그 기준도 조금이나마 낮출 수 있었다. 선경 선생님께서 나 스스로와 대화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는데(오글거린다고 하셨지만 정말 중요하다.) 스스로와 대화하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또한 항상 내 주위에 있던 것들의 소중함도 느낄 수 있었다. 한국 음식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았고, 항상 어머니께서 빨래해 주시고 방을 정리해 주시는 게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따뜻한 물로 샤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었고, 한국에서 한국어로 원활하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 것도 감사한 일이었다. 어딜 가나 데이터로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 아니었고, 찬양을 매일 들을 수 있는 것도 너무 감사한 것이었다.... 이제 또 이 모든 것을 누리며 살면 소중함을 잃어버리게 될 텐데, 내가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않으면 좋겠다.
밤마다 일지를 쓰는 시간도 좋았다. 다른 친구들을 보니 거의 대부분 싫어하는 것 같았고 나만 좋아했던 것 같지만 내게는 무척 행복한 시간이었다. 명훈 선생님께서 그렇게까지 열심히 쓸 필요가 없다고 하셨을 정도로 일지를 길게 썼다. 지금 이 후기도 생각보다 너무 길어져서 좀이 아니라 굉장히 당황스럽다 ^^... 그렇지만 명훈 선생님께서 나의 생각을 나의 방식대로 표현하는 것이 내 글이라 하셨고, 선경 선생님께서는 내가 자랑스럽고 대견하고, 보람을 느끼신다고 하셨기에 그냥 길게 쓰려고 한다. 사랑해요 선생님들 ㅜㅜ 어쨌든 원래 나의 생각을 글이나 말로 표현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생각보다 더 많이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게 글을 쓰는 능력이 꽤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고, 자신감도 생겼다.
특히 선생님들께 너무 감사했다. 내 일지를 보면 거의 짝사랑 수준으로 명훈 선생님을 좋아한다고, 존경한다고 적어 놨는데 그 정도로 명훈 선생님이 좋았다. 다른 친구들은 아재 개그를 싫어했지만 너무 내 취향이었고 ㅎㅎ 웃으시는 것도 좋았고, 웃으실 때 눈가가 접히는데 그것도 예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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